초등학생이 기획한 연구

논문은 원래 서론을 잘 쓰기가 가장 어렵다. 그러니 이들이 서론, 결론만 베끼고 본론의 연구는 그래도 직접 하지 않았을까 기대하시는 분들이 있다.

Asian Journal of Humanity, Art and Literature라는 저널에 게재된 이 논문을 살펴보자.

다음 논문을 베낀 것이다. 처음 6개 단락을 연속해서 베낀 것을 확인하고 더 이상 대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본론을 살펴보자.

우선, 원문에서 응답자 932명의 특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제 이들의 논문이다. 원본의 데이터 932개 중에서 왠지 100개만 뽑았다. 귀찮았나? 근데 이렇게 숫자를 바꿀 때는 조심해야 된다.

분모가 100이니 모든 백분율이 정수로 떨어져야 되는데 소숫점이 붙어있는 게 이상하다. 데이터 개수가 달라졌는데 모든 연령 비율이 원문과 똑같이 유지되는 놀라운 뽑기 신공을 보여주고 있다. 근데 정작 그래프에서는 20대 이하의 비율이 본문의 20.6%가 아니라 33%로 나온다.

이들 논문의 그림 4

특히, 저자들은 “Online survey was produced by the author”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문이야 단독저자였으니까 ‘the author’가 맞지만, 베낀 논문에서는 저자가 4명이니까 ‘the authors’라고 써야 한다. 숫자도 다 틀리는데 이 정도는 넘어가자.

2016년에 설문조사를 직접 했다는 저자들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SNS가 집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문 실험을 설계했다니 이거 하나는 정말 기특하지 아니한가?


원문의 저자인 이상원 교수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

<한동훈 장관 조카들 논문 표절 피해 당사자로서 쓰는 글>

For my US friends: My work's been plagiarized by UPenn admittees: https://tinyurl.com/2uku23ta

최근 어떤 단체에서 내 논문이 미주 한인 고등학생들에 의해 심각하게 표절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들이 (아이비리그) 대학 지원 당시 활용했던 논문이 내 2018년 논문(“The Role of Social Media in Protest Participation: The Case of Candlelight Vigils in South Korea”)을 심각하게 표절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미주 한인 고등학생들이 누군지 전혀 몰랐고 표절을 어느 정도 심각하게 했는지 궁금한 마음에 한번 그 친구들의 논문을 열어봤다. 나는 몇 문장 베끼고 짜깁기 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통째로 다 베낀 수준이었다. 방법론 파트는 더 가관이었다. 측정변인들도 거의 같고 심지어 몇몇 변인들은 통계치가 소수점 두 자리까지 같았다 (평균, 표준편차 등). 데이터가 완전히 다른데 통계치가 똑같다? (샘플 사이즈 차이도 아주 크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이 변인들도 왜 넣었는지 전혀 알수가 없다. 아무 맥락도 없이 마구잡이로 내가 쓴 변인들을 복사 붙여넣기 하고 막상 가설들은 테스트 하지도 않았다 (물론 어떻게 테스트하는지 모르니까 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쌩뚱맞게 바 그래프만 몇개 그려놨다.

내 논문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회불평등, 보건건강, 증오범죄, 의과학기술) 논문을 썼고 모두 표절이 확정되어 게재가 철회되었다. 심지어 내 논문을 표절한 정도가 (46.2%) 가장 그 수치가 낮고 표절률이 70%가 넘는 논문도 두 개나 있다. 내가 그 논문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표절의 패턴이 내 논문과 동일하다고 한다. 샘플 사이즈나 통계치 숫자만 약간씩 바꾸는 방식이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못해서 몇 개는 그대로 베껴져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때 학생들이 단순히 문장만 “표절” (plagiarism)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데이터를 수집하여 연구를 수행했는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든다. 학계에서 이런 식의 표절이나 조작은 원 스트라이크 아웃이다. 물론 만약 내 추론이 틀렸다면 본인이 원 데이터를 공개하면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애매한 영역”이 (예를 들면 의역이 제대로 되었는지, 인용 양식을 제대로 지켰는지, 누구까지를 공저자로 넣어 줄 것 인지 등) 전혀 아니다. 남의 저작물을 그냥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입시에 활용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펜실베니아대학 (Upenn)의 치대에 들어갔다. 물론 이런 식으로 어떤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문제다. 요즘 한국 상황을 보면 모든 일이 정치적으로 해석이 된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것도 솔직히 크게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계의 일원으로써 이 과정을 자세히 밝히지 않고 넘어가면 불의에 일조하는 것 같아서 고민 끝에 이 글을 쓴다. 이 글이 이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는 데, 그리고 나아가 공정한 입시 시스템을 생각해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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